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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명] 오늘 대한민국은 기억해야 합니다.

 

대한민국 첫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개원을 기념하며

 

오늘 대한민국은 기억해야 합니다.

 

 

 

   미안합니다. 

   어린이들이 장애가 있다는 이유로 제때 제대로 치료받을 수 있는 기회조차 얻을 수 없었습니다. 어린이들이 자기가 살고 있는 지역에서 치료받을 수 없어 치료할 수 있는 병원을 찾아 떠돌아다녀야 했습니다. 성인장애인에서 약37%가 중증(심한)장애인데 비해 장애어린이는 85%가 넘게 중증장애입니다. 그리고 장애어린이는 전 국민에서 가장 사망률이 높습니다. 장애인 중에서도 10대와 10대미만, 즉 어린이가 10배이상 많이 사망합니다. 그런데 대한민국에서 이 어린이들은 보이지도 않습니다.

 

 

   오늘 대한민국에서 처음으로 건립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대전에서 개원을 합니다.

   민간병원에서 돈이 되지 않아 어린이재활치료를 기피했습니다. 정부는 2015년까지 장애어린이의 재활치료를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요구에 담당부서와 담당자가 없다고 답했습니다. 2016년 국정감사에서 병원의 필요성이 제기됐을 때 정부는 전문가를 내세워 공공어린이재활병원 필요없음이란 결론을 내렸습니다. 국회에서 일명 건우법이 발의됐지만 폐기되었습니다. 2017년 문재인정부가 들어서고 100대 국정과제에 들어갔지만 시기는 미뤄지고 규모는 축소되었습니다. 20187월 처음으로 대전 건립이 확정되었고, 2020년 장애인건강권법 개정으로 건립 및 운영을 위한 법적 근거가 마련되었습니다. 하지만 예산문제로 권역별 병원 및 센터 건립 자체가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22년엔 지정 운영 중인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의 예산이 전액삭감됐다 복원되기도 했습니다. 대한민국 최초로 건립되는 대전에서도 우여곡절이 많았습니다. 건립예산의 부족으로 받은 민간의 기부가 공공이란 이름 자체를 흔들었고, 위탁으로 진행된 건립과정은 순탄치 않았고 수차례 개원이 연기됐습니다. 이런 시간 동안 6살 아이가 16살 청소년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길이 없는 길을 걸었습니다.

   2013년 권역별 재활센터가 개원했는데 소아재활을 하지 않는다고 해서 처음으로 서명을 받았습니다. 장애어린이가족들이 부족한 병상으로 의자놀이를 하다가 이제 그만 투닥투닥하고 토닥토닥하자고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20144월에 장애어린이 여섯명이 가슴에 '대전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붙이고 마라톤대회에 참가했습니다. 5월에도, 9월에도 참가했습니다. 가슴에 그 문구를 붙이고 오를 수 없다는 산들도 올랐습니다. 이런 우리의 발걸음을 정부와 지자체는 모른 척했고, 장애인단체들은 부담스러워 했습니다. 우리는 시민들께 호소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시민들이 건립자이자 홍보자가 되어달라고 했습니다. 그해 111000여명의 시민들이 모여 대전어린이재활병원시민추진모임을 만들었고, 2015년 제1회 기적의 마라톤을 개최한 후 사단법인 토닥토닥으로 전환을 해 건립운동을 조직적으로 추진했습니다. 2016년 기적의 새싹 캠페인으로 전국적 공감의 확대를 가져왔고, 국정감사에도 논의가 되게 했습니다. 정부가 전문가의 용역을 빌어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필요없다고 했지만 2017년 대선후보공약과 100대국정과제로 이끌어냈습니다. 이후에도 쉽지 않았습니다. 시청 앞에서, 국회에서, 보건복지부에서 무릎을 꿇었습니다. 2018년 여름 청와대 앞에서 제대로 된 병원건립을 위해 일주일간 절을 하며 호소하기도 했습니다. 당사자들의 목소리를 무시하는 정부와 지자체에 수없이 의견을 제시하는 한편 연구용역도 하고 책도 출판했습니다. 2020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 및 운영의 법적 근거를 만들기 위해 전국의 시민들과 연대했습니다. 밀실협약으로 공공의 이름이 위협받을 때 이를 지키기 위해 수많은 비난도 감내했습니다. 2022년 장애어린이가족에게 설명도 없이 개원을 연기해도 참았습니다. 2023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을 앞두고 운영위원회에서 토닥토닥을 배제했지만 우리는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을 지원하기 위해 무장애 통합놀이터를 조성했고 병원에 기증할 그림책 1000여권을 한 권 한 권 골랐습니다. 8회 기적의 마라톤을 통해 병원 개원을 축하하며 환아가족쉼터 조성을 위해 달렸습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개원은 많은 병원 중 하나를 여는 것이 아닙니다.

   대한민국에 없었던 소아재활의료체계를 구축하는 것입니다. 권역의 병원을 중심으로 지역과 네트워크체계를 만들고 소아재활의료진의 확보와 육성을 위해 근무조건을 개선해야 합니다. 한편 장애어린이를 중심으로 재활과 치료, 교육과 돌봄을 통합적으로 운영하는 새로운 시스템을 만드는 시작입니다. 치료와 교육 중에 하나를 선택해야만 했던 야만의 시대를 정리하고 장애와 비장애를 넘는 통합의 시대를 여는 것입니다. 보건복지부와 교육부가 부처 간 칸막이를 넘고 병원에서 의사, 간호사, 물리치료사, 작업치료사, 언어재활사, 심리치료사, 교사, 사회복지사, 장애인가족이 함께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 공공의 이름은 기본입니다. 민간의 역할을 말하기 전에 공공의 책임을 다해야 합니다.

 

 

   우리는 정치권이 아닌 국가가 책임지길 바랍니다.

   문재인정부가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약속했을 때, 장애어린이가족은 대한민국이 우리 아이를 드디어 국민으로 인정했다고 울었습니다. 그동안 내 아이라고 생각했다면, 내 지역 주민으로, 내 나라 국민으로 생각했다면 최소한 치료받을 기회조차 배제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우리는 정치권의 이해관계가 아니라 국가의 의무와 책임을 말했습니다. 그런데 언젠가부터 정치의 색깔로 칠하고 시민의 발걸음을 왜곡하고자 합니다. 우리는 벌써 세 번째 정부를 맞고 있습니다. 이젠 윤석열정부가 국가답게 장애어린이의 건강과 생명을 지키길 바랍니다. 이는 장애어린이에 대한 시혜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근본을 지키는 일입니다. 더이상 돈문제로 아이들의 생명위험을 방관하는 일이 없도록 정부와 지자체의 지원을 명시화해야 합니다.

 

 

   오늘 대한민국은 기억해야 합니다.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은 장애어린이가 나서고 시민들이 함께 이끌어낸 사실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장애어린이가족과 시민의 목소리를 귀 기울여 들을 때 제대로 공공어린이재활병원이 운영될 수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아직 우리의 아이들의 생명과 건강이 추첨으로 결정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는 것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10여 년간 공공어린이재활병원 건립을 위해 달려온 시민들이 함께 개원을 축하합니다.

 

 

 

2023530

 

 

 

사단법인 토닥토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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등록자

김동석

등록일
2023-10-30 11:33
조회
230